비평

criticism

내 영혼은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재보다 더 많은 불길을 갖고있소!내 마음은 당신의 망각보다 더 많은 사랑을 갖고 있소!

-Victor Hugo(빅토르 위고)의 황혼의 노래 25번 1835년 출판시집

두 세기동안 미술역사학자들은 원천과 영향이라는 두 가지 해석방법을 남용해왔습니다.

남홍의 작품을 바로 이 두 가지에 근본을 두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거의 완벽하고도 동시에 복합적인 남홍의 작품을 미술학 역사에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배치시키는 것은

그분의 작품의 풍부함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범위를 더욱 잘 파악하고 이해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의 완벽하고도 동시에 복합적인 남홍의 작품을 미술학 역사에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배치시키는 것은

그분의 작품의 풍부함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범위를 더욱 잘 파악하고 이해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남홍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어찌 Georges Mathieu(죠르쥬 마티유)의 작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몸짓을 남홍님의 작품에서 느낄 때 ,

어찌 아시아의 서예만이 간직할 수 있는 장엄과 위엄을 발휘하는 Georges Mathieu(죠르쥬 마티유)의

스타일에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홍이 노래하며 춤추며 아크릴이며 잉크며 페인트며 접착제며 불에 태운 종이를 캔버스에 던질 때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폐지하려고 했던 1960년대의 백남준 화백이나, John Cag(존 케이지) 혹은

Luigi Nono(루이지 노노) 같은 예술가들이 속했던 Fluxus에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홍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보여 줄 때 우리는 그 분이 Haute couture(오뜨쿠뛰르)의

디자인 재능까지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남홍은 그녀의 찬란한 표현주의 욕망을 통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예술표현방법상에는 어떠한 구별도

있을 수 없으며 계층이나 구조의 구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그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예술적인 표현방법을

능통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술 창조 작업과 계획하고 행동을 통해서 삶을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그녀의 영혼 전체가 육신과 영혼과 그 전체가 한 몸이 되어 이 방식에 종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슬픔을 잊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그녀는 그림 자체를 영웅화시키며, 창조 작업 자체를 찬양하며,

모든 정열을 쏟아 예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남홍은 또한 말합니다.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똑같은 터치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그것만이 나를 사로잡으며, 캔버스 밖의 세계는 나에게 무의미하며 나에게 무관심하다"

그 분에게는 흔들거리는 세상 속에서, 예술만이 실존적이고 인간적인 대답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항상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나무이거나, 캔버스를 탈출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비나 새들이거나, 움직이는 산이거나 다양한 소재이지만 늘 인간은 제외하고 있습니다.

그녀 앞에 펼쳐진 캔버스를 대할 때마다 남홍은 자신의 반사를 직시하면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도

견줄 수 있으며, 그때마다, 이미지가 계시가 되는 "그곳" 이승이 아닌 다른 세상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숲의 가장자리"나"축하합니다"

혹은"후회"같은 작품제목은 바로 남홍의 이 다양한 면목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그분이 차마 다하지 못한

그 한마디, 차마 끝낼 수 없었던 그 분의 몸짓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무수히 방황하는 그녀의 영혼은 마침내 고통이 가라앉을 수 있도록,

언젠가는 변형이 가능할 날이 올 수 있도록 차근차근 힘을 "수집"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실행의 특정한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까닭인지 그분이 좋아하는 매체는 아크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캔버스에 부조나 과립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1986년 그녀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로는 그녀는 촛불에 태운 한지를 캔버스에 추가했습니다.

이 상징적인 형태로, 그녀는 죽음과 이별과 분리의 곤경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는 프랑스 전통중의 하나인 Ars Moriendi(모리엔디 아르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에 타다 남은 종이조각이나, 연소 중 나온 먼지마저 그녀에게는 새로운 재료가 되어주는 것이며,

" 가능한 부활의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2006년부터는"환경홍보사절대사"로 임명이 되어서,

남홍은 그 작품에 더 나은 삶을 위해 여러가지 경고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Daniel Spoerri(다니엘 스포에리)가 했던 것처럼, 남홍 자신의 작품에, 캔버스에, 탄산음료수 빈 병,

알루미늄조각이나, 폐기물, 재활용 제품 등을 이용하여 공포와 희망으로 만들어진 장미를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남홍은 인생의 위대한 춤을 구현함으로써 영구적인 운동을 추구하는 화가이며

영원히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왜가리새의 비행이나, 혜성의 길, 나비의 부활과 변화하는 계절... 남홍의 작품은 삶의 주기의 일부로써

간주될 수 있으며, 그 기원을 고전적인 전통 속에 두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편적인 세계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확한 연출법을 따라서, 그녀의 퍼포먼스는 균형을 복원하기 위해 불가피한 의식이 되는 것이고,

우주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조화로운 세계를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해체되고 상처난 이 세계를 감싸주는 시인답게, 심벌스와, 드럼을 치며, 마치 보티첼리의 작품의 여신들처럼

남홍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대의 제스처를 찾으면서 두려움 없이 황홀무아지경으로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를 몰아가는

그녀의 정열 덕택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아무런 근심없이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의 날개를 태워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criticism2